글로벌 CBDC는 왜 조용해졌나: 미국·유럽·중국의 2026 지급결제 전략
7월 14일 유럽중앙은행(ECB)은 디지털 유로 파일럿에 참여할 지급결제사 36곳을 선정했습니다. CBDC가 시장의 중심 화제에서 멀어진 듯 보이지만, 중앙은행의 움직임이 멈춘 것은 아닙니다. 개인이 일상적으로 쓰는 범용 CBDC의 채택은 기대보다 더디게 진행되는 반면, 법제화와 국경 간 결제, 기관 간 자금이동을 위한 인프라 구축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미국·유럽·중국이 같은 CBDC라는 단어 아래에서 왜 서로 다른 길을 택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CBDC가 조용해진 이유는 발행보다 실제 사용처가 중요해졌기 때문입니다
CBDC는 중앙은행이 발행하고 보증하는 디지털 법정화폐입니다. 그러나 국가가 기술을 개발하거나 파일럿을 시작하는 일과, 소비자와 가맹점이 결제수단으로 일상적으로 선택하는 일은 다릅니다. Atlantic Council 집계 기준으로 146개 국가·통화권이 CBDC를 탐색하고, 77곳이 개발·파일럿·출시를 포함한 고도화 단계에 있습니다. 실제 파일럿은 41개이지만, 정식 출시 국가는 바하마·자메이카·나이지리아 3곳에 그칩니다.
출시 이후의 이용률도 리테일 CBDC 확산이 쉽지 않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IMF는 나이지리아의 리테일 CBDC 이용자가 인구의 2% 미만이고, 자메이카와 바하마는 1% 미만이라고 정리했습니다. 단순히 디지털 지갑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기존 은행 앱, 카드, 간편결제보다 분명한 이용 이유를 만들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최근의 핵심은 ‘누가 먼저 발행하느냐’보다 어느 결제 흐름에서 비용·시간·정산 문제를 실제로 줄일 수 있느냐에 옮겨가고 있습니다.
유럽은 디지털 유로를 발행하기 전 법과 결제망부터 맞추고 있습니다
유럽의 디지털 유로는 가장 구체적인 리테일 CBDC 준비 사례이지만, 아직 출시 단계는 아닙니다. ECB는 2026년 7월 36개 지급결제사를 파일럿 참여자로 선정했으며, 은행뿐 아니라 비은행 결제사업자도 포함했습니다. 이들은 이용자 지갑과 가맹점 결제 기능을 실제 환경에 가깝게 검증하게 됩니다. 50곳 이상이 참여를 신청했다는 점은 기존 금융권과 결제사업자가 디지털 유로를 별도 시스템이 아닌 지급결제 생태계의 변화로 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파일럿은 2027년 하반기부터 12개월간 진행될 예정입니다. 이때 쓰이는 베타 디지털 유로는 법정통화가 아니며, ECB도 관련 규정이 채택된 뒤에야 실제 발행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법안이 2026년 중 마련된다는 전제에서 잠재적 첫 발행 준비 시점은 2029년입니다. 유럽이 추진하는 것은 새 결제수단 하나를 추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역내에서 통용되는 공공 디지털 결제 선택지를 확보하려는 작업입니다.
미국은 CBDC 대신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규칙을 먼저 세웠습니다
미국의 방향은 유럽과 뚜렷하게 다릅니다. 2025년 1월 백악관 행정명령은 연방기관이 미국 안팎에서 CBDC를 설립·발행·촉진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진행 중인 CBDC 계획을 중단하도록 했습니다. 미국은 중앙은행의 직접 발행형 디지털 달러보다, 민간이 발행하되 법정화폐 준비자산과 규제를 갖춘 달러 스테이블코인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그 방향을 보여주는 것이 2025년 7월 법제화된 GENIUS Act입니다. 이 법은 지급결제용 스테이블코인의 발행과 규제를 위한 연방 틀을 마련했고, 발행자가 유통량에 상응하는 준비자산을 보유하도록 규정했습니다. CBDC가 중앙은행의 직접 부채라면, 스테이블코인은 민간 발행사의 상환 의무와 준비자산 관리에 기반합니다. 같은 디지털 달러 결제라는 겉모습과 달리, 발행 주체와 신뢰 구조는 다릅니다.
중국 e-CNY는 홍콩 연결과 국제 운영 인프라를 넓히고 있습니다
중국의 e-CNY는 범용 CBDC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의 파일럿으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 흐름은 국내 QR 결제 확대만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홍콩 금융관리국은 홍콩 거주자가 현지 휴대전화 번호로 e-CNY 지갑을 만들고, FPS를 통해 지갑에 충전할 수 있다고 안내합니다. 현재 19개 홍콩 은행이 이 충전을 지원하며, 홍콩에서 개설한 지갑은 국경 간 소매결제에 사용할 수 있지만 개인 간 송금은 지원하지 않습니다.
홍콩 FPS와 연계된 e-CNY 국경 간 소매결제 안내
중국은 2025년 9월 상하이에 디지털 위안화 국제운영센터도 출범시켰습니다. 이 센터는 국경 간 디지털 결제 플랫폼, 블록체인 서비스 플랫폼, 디지털자산 플랫폼을 함께 제시했습니다. e-CNY를 곧바로 국제 결제의 표준으로 만들었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위안화 기반의 디지털 지급과 금융시장 서비스를 해외 결제 흐름과 연결하려는 방향은 분명합니다. 홍콩 지갑의 사용 범위와 한도가 별도로 설정된 점도, 이 과정이 단계적 시험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글로벌 CBDC의 무대는 기관 간 결제와 국경 간 정산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리테일 CBDC가 사용처를 찾는 동안, 중앙은행의 관심은 기관 간 자금이동과 자산 토큰화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습니다. BIS의 프로젝트 아고라는 토큰화된 중앙은행 준비자산과 상업은행 예금을 하나의 공유 플랫폼에서 다루는 국경 간 결제 실험입니다. 여러 통화의 대금과 자산을 동시에 교환하는 원자적 결제를 통해, 지금의 국제송금과 외환 정산에서 발생하는 시간차와 복잡한 중개 절차를 줄일 수 있는지 검증합니다.
프로젝트 아고라에는 8개 중앙은행과 40곳 이상 금융기관이 참여했고, 프로토타입 구축을 마친 뒤 일부 통화와 참여자를 대상으로 실가치 거래 시험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아직 상용 결제망은 아니지만, 이 실험은 CBDC 논의의 현재 위치를 잘 보여줍니다. 글로벌 경쟁의 초점은 소비자 지갑의 숫자보다, 중앙은행 화폐와 은행 예금, 토큰화 자산을 안전하게 연결해 국제 금융거래를 처리할 수 있는지에 있습니다.